‘주류화(메인스트리밍)’라는 표현이 있다. ‘비주류의 비주류’라는 표현은 지금 민주당의 민주정책연구원장 하는 박순성 선배한테 들었던 얘기이다. 어느 시대에나 courant이 있고 여기에 대한 anti-courant이 있는데, 그 anti-courant 내에서도 다시 anti-courant이 있을 수 있다…는 그런 얘기인데. 동구가 붕괴되고 경제 학설사 하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표현하였다. 맑스 경제학은 경제학 내에서도 비주류인데, 여기서도 노동경제학이 아니라 학설사나 경제사 같은 데로 빠지면 아주 힘들어진다. 공부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하는 일이 먹고 살기는 아예 날 샜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나는 사상사나 경제사만 이러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수리경제학 전공하는 사람들은 영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았다. 친했던 친구 한 명은 결국 게임회사에 취직했고, 또 다른 선배는 헤매고 헤매다가 결국 전경련에 들어갔다. 현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비주류의 비주류라는 표현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래서인지 비주류를 그냥 내 삶으로 받아들였다. 주류가 되려고 했던 적도 없던 것 같고, 주류가 되려고 생각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찌질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고, 어차피 비주류로 사는 것 재밌는 걸 재밌게 해보자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좋았던 건 잠시만 밀리면 아주 밀린다는 그런 초조함 같은 것도 가져본 적이 없고, 승진이나 성공을 위해서 줄을 서는 노력도 거의 안 한 것 같다. 벌써 몇 년 지났는데, 환경운동연합에서 10주년 기념행사 하면서 ‘녹색의 주류화, mainstreaming of green’이라는 구호를 걸었었다. 환경이 더 이상 비주류의 변방에서만 머물지 말고 주류화를 이루자는 얘기였는데, 그렇게 어색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질문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을 잠시. 물론 환경운동연합은 그 후에 아주 어려워졌고 여전히 반전의 흐름을 잘 못 잡고 있기는 하다. 좀 거창하게 표현하면, 혁명이나 정권교체 혹은 개혁과 같은 것들을 사람으로만 보면 주류를 교체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래봐야 현실에서 힘이 없었다는 이유로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서 더 고상하거나 고매할 것이라는 보장은 별로 없다. 그래도 지배 세력이나 주류를 교체하는 것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교체를 하다보면 또 다른 흐름이 나올 수 있고 최소한 진화의 속도는 빨라질 것 같다. 난데없이 비주류와 주류 얘기가 생각난 건 ‘박범신’(작가·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때문이다. 이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 어제 저녁 내내 고민을 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문화경제학 최종 정리를 하는 중인데, 복잡해서 빼놨던 수치 같은 거 다시 계산해보고 좀 방어하기 어려운 수치들은 빼고 그런 작업 중이다. 분명히 초고 쓸 때는 박범신이 요즘 뭐하는 줄 몰랐고, 간간히 TV에서 일장 연설을 해서 저 아저씨 왜 저러시나 그런 생각을 잠깐 했을 뿐이다. 어쨌든 좀 더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지만, 형식적으로 드러난 것만 가지고는 나중에 이명박 정권의 ‘문화 5적’ 같은 걸 누군가가 정리한다면 그 안에 들어갈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렇게 권력이 좋더냐.’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힘을 가질 기회가 되면 서슴없이 나서겠다는 아저씨들이 또 한 트럭은 줄을 서 있는 것 같다. 이명박의 당당함이 과연 어디에서 나오나. 그런 생각을 좀 했었는데, 저렇게 손 들고서 나 좀 시켜달라는 사람이 그렇게 많으니…. 서울문화재단이 주적이었던 적이 있었고, 여기랑 참 많이 싸웠었다. 초대 대표이사를 유인촌이 했었는데, 적들은 모두 흩어지리라…. 몇 년 지나서 돌아보니, 그 시절에 하이서울 페스티발 등 유인촌과 싸우던 사람들은 지금 흔적도 없다. 나는 이제 현장 싸움은 떠났고, 당시 총사령관격이던 문화연대의 지금종 선배는 제주도로 완전 낙향했고, 문화연대 살림이 어려워지면서 실무진들도 다 흩어지게 되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세종문화회관에 아예 전문 식당가를 낸 걸 보면서 서울시 욕만 딥다 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서울문화재단이라는 걸 까맣게 까먹고 있어서 여긴 요즘 뭐 하나 봤더니 박범신이 툭 튀어나오더라…. 생각해보면 한나라당의 진짜 개국공신은 이문열이 아니던가? 정작 자기가 정권을 열어놓고 본인은 요즘 야인처럼 사는 것 같다. 하긴…. 문화부 장관을 한다고 더 영광이 있겠는가? 이미 살아서 영광은 볼 만큼 본 사람인데…. 이문열, 생각보다 재밌는 구석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에 집중해서 보느라고 그도 자기 책이 불타는 아픔도 겪었는데, 가만히 이문열의 식구나 주변 상황을 보면 나름대로는 소탈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높은 자리는 이문열이 가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엉뚱한 사람들이 주류 노릇 단단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시인 황지우는 시인으로 더 기억하고 싶었는데,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총장으로 더 유명해진 것 같다. 아마 그만두면서 유명해진 대표적 인사가 아닐까 싶다. 대통령이나 지자체장이 가지고 있는 자리들이 몇 개 문화 쪽에도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여기 위원 명단을 며칠 전에 봤는데 이것도 상당히 재밌다. 결국 누군가가 채우기는 채우게 되는 자린데, 어느 정권이 오든 일부는 예술가들이 채우게 된다. 문화인들이 공무원 밑에 있기 싫다고 해서 노무현 대선 공약으로 생겨난 기구이다. 나름대로는 요지경이다. 한국에서 남자들이 50이 넘어가면 그 전에 안 그러던 사람들도 엄청나게 자리 욕심을 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유를 물어보니, 죽고 나서 ‘학생부군신위’라고 쓰기가 싫다나? 난 사람들이 훈장 욕심 내는 것도 영 못마땅하게 생각하고는 했다. 영광을 국가가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이제는 좀 완화될 것 같기도 한데, 박경리 선생 등 사실은 식구들이 받는 거라서 아직까지는 훈장을 거부한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것 같다. 샤르트르가 노벨상 거절했다는 얘기가 오히려 더 오래가는 것처럼, 국가가 주는 훈장이 아니라 민중들이 자신의 글을 기억하는 걸 더 자랑스럽고 명예롭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한 번쯤 나오면 좋겠다 싶기도 하다. 정권이 이제 내년 말이면 끝난다. 그간의 전례를 보면, 개국공신들 중에서 아직도 한 자리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열심히 줄대고 있을 것이고, 공무원들은 끝나가는 정권에서 한 자리 했다가 다음 정권에서 내내 구박이라고 몸 사리는 동안에 그래도 그거라도 한 자리 하겠다고 또 박사들이나 교수들이 열심히 줄댈 시점이다. 민주당 정권은 정말로 주류 세력의 교체였을까, 그런 질문을 뒤늦게 한 번 던져보게 되는 순간이다. 30년이 지나서 지금의 20대들이 50대가 되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어쨌든 특별한 변화가 없으면 장관을 비롯한 각종 자리들이 40대로 대거 낮추어지는 경천동지할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기 전에는 지금의 20대 중에서 대통령도 나오고, 장관도 나오게 될 거다. 결국 지금 살아남은 20대들에게 그 자리가 갈지, 아니면 비주류의 비주류로 현장에서 어떻게든 버텨낸 활동가들에게 그 자리가 갈지, 그런 걸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세상이라는 게 늘 고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 가끔은 전혀 예기치 못한 흐름에 의한 반전도 생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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