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자해지는 스스로를 버리는 길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한 때는 잘 나가던 정치인이었지만 몇 번 낙마를 하고서 재기에 나섰지만 곧 사정당국의 칼날을 맞았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이다.
다른 한 사람이 있다. 언론의 외길을 걸어오다 지난 노무현 정권의 말기에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으로 임명된 박래부 이사장이다.
두 사람의 선택과 이 두 사람을 대하는 소속 기관의 태도를 보면서 '결자해지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민주당원들도 MB에 맞서 김민석 지키는데...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김민석 최고위원은 현재 민주당사에서 벼랑 끝 농성을 벌이고 있다. 검찰의 소환에 이은 구속영장 청구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마저 거부하고 홀홀 단신 농성에 돌입했던 그다.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검찰은 수사관 10여 명을 보내서 강제 구인에 나섰지만 민주당 당직자와 당원들의 저지로 무위에 그쳤다. 민주당은 당 최고위원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을 용인하면 제2, 제3의 정권에 의한 표적 수사와 탄압이 이어질 수 있기에 당 차원에서 불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김민석 최고위원은 현재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 CBS노컷뉴스 | |
그러나 민주당의 심사가 그렇게 편해 보이진 않는다. 무엇보다 수권 야당이 법 집행을 막아 나선 것도 그렇고, 수억대에 이르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 김민석 최고위원이 뚜렷한 반격카드를 내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면 김 최고위원의 벼랑 끝 농성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검찰 역시 구속영장의 집행 유효기간이 많이 남지 않은 상태에서 다각도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물리적인 구인 시도가 성공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김민석 최고위원은 한 때 '대통령감'으로도 촉망받던 잘 나가던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지난 2002년 선거에서 '정몽준' 카드를 택한 그는 그 이후로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걸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거치면서 그는 민주당 간판을 달고서 다시 재기의 도전에 나섰다. 어느 정도 당내 입지도 구축한 것으로 보였던 그에게 이명박 정권의 사정칼날이 심장을 겨누었다.
그에게 씌워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결국 법정에서 그 실체가 가려질 모양이다. 여기서 섣부르게 그에게 어떤 확정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생각해 봐야겠다. '결자해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새롭게 거듭나서 국민의 품 속으로 들어가려면 무엇보다 당과 당의 정치인들이 투명해야 하며 민의를 잘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이명박 정권이 현재와 같이 그로기 상태에서 헤매고 있지 않다면, 김민석 최고위원의 벼랑 끝 농성과 민주당의 구속영장 집행 거부 행위가 용인받을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 국민 중에는 이명박 정부의 '민주당 탄압'에 찬성할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김 최고위원의 이러한 처신이 당연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것이 대의인지, 어떤 선택이 장기적으로 자신의 정치 생명에 도움이 되는지는 김 최고위원이 잘 알 것이라 믿는다. 그의 현명한 '결자해지' 정신이 필요하다.
MB의 언론 탄압에 저항하자는 수장을 내몬 언론재단 직원들박래부 언론재단 이사장은 수개월 동안 정권의 사퇴 압력에 시달리다 결국 지난 10월 말 사표를 문화부 장관 앞으로 제출했다. 17일 유인촌 문화부장관은 박래부 이사장, 정운현 연구이사 등 4명의 상임이사의 사표를 수리했다.
'결자해지' 자세로 물러나는 박 이사장과 정 이사의 심정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을 몰아낸 정권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도 통렬히 비판했지만, 언론재단 노조가 뒤에서 등을 떠밀어 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한 행동에 대해서 말을 아끼지 않았다.
세상에는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맘대로 막가파식으로 행동해서는 사회정의도 법질서도 유지될 수가 없다. 공기관의 임원에 대한 임기제를 보장한 것은 다름아닌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률에 의해서이다. 이 법률에 위배되는 행동을 현 정권과 집권 여당은 서슴치 않고 자행했다. 그런데 이 지점에 대한 언론재단 노조의 비판은 찾아볼 길이 없었다.
▲ 박래부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 CBS노컷뉴스 | |
굳이 구태여 잘못을 따진다면 정권 말기에 이들을 언론재단 이사장과 이사직에 선임한 노무현 정권의 책임이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정권교체기에 주요 공기관의 임원직에 대해서 노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인수위는 협의 절차를 거쳐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전 정권이 임명한 인사들이나 이들을 물러나라고 압력을 행사한 정권에 간택되어 이들의 후임으로 올 새 이사들 모두 굳이 말하자면 '낙하산' 딱지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생존권이 위기에 처했다라고 하면 모든 것이 합리화 될 수 있을까? 국정감사 기간에 보도된 연봉 평균 '6천5백만원'을 보면 '생존권'이란 단어는 강남부자들에게 어울릴 얘기처럼 들렸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세상사에는 이치와 최소한의 도리가 있는 법이다. 죽어가는 생명에겐 앞에서 '너 죽는다'고 말해선 안 되는 법이다. 언론재단 노조가 언론지원 기관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어떠한 노력이라도 진실하게 보여줬다면, 지금처럼 언론재단 노조를 향한 세간의 비난은 터져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던 정연주 전 KBS사장 강제 퇴출과 이에 맞섰던 KBS사원행동, 반대편에 서 있던 KBS노조, 구본홍 MB언론특보의 낙하산 사장 임명에 맞서고 있는 YTN노조의 투쟁과 박래부 이사장 사퇴 압력을 둘러싼 전국언론노조 언론재단 지부의 행보는 너무나 선명하게 비교된다.
전 정권이 임명한 낙하산 인사들이라도 할지라도 그들이 촛불과 언론자유를 탄압한 정권에 맞서 언론의 독립성 수호를 외칠 때 괭과리를 두드리면서 나가라고 소리친 조합원들에 대해서 소위 '진보언론진영'은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 것인가? 언론재단 노조는 이후에 올 '2MB의 낙하산 인사'에 맞서는 투쟁을 어떻게 감당해 낼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러나는 그들도 전 정권이 임명한 '낙하신 인사'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언론재단 노조가 스스로 언론지원 기관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진지하고도 뼈 아픈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언론재단 노조의 행동 하나하나는 분명히 우리 언론의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언론재단 지부의 '결자해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