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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이 잘 나간다고? 지금이 더 위기
[진단] 지도력 부재 등 총선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대선 패배 막아
 
윤석규   기사입력  2012/03/05 [23:46]
총선 공천심사를 둘러싼 민주당의 내홍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0년 지방선거 공천심사의 혼란을 능가한다. 당시에는 서울시장과 경기도를 놓쳤지만, 나머지 부분의 승리로 그 과오가 묻혀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총선 결과와 직결될 것이다. 이미 민주당의 상승세는 변곡점을 지났다. 일부 탈락자들의 무소속 출마가 속출할 것이다. 야권연대의 전망도 부정적이다. 자칫 재앙에 가까운 결과가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총선 이후 결과가 나빠도, 대선준비를 앞세워 총선관련 과오가 묻혀버릴 수 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대선 패배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공천이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사태를 이렇게 이끈 원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의 일차적 원인은 지도력 문제이다. 한명숙 대표의 등장과 더불어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다. 사실 한명숙 대표는 두 차레의 장관과 총리를 지낸 화려한 정치이력에 비해 이렇다할 지도력을 보여준 바 없다. 무난한 관리형 지도자였고, 선량한 이미지의 대독총리였다. MB정부의 표적 수사로 얻게된 상징성이 그를 띄웠을 뿐이다. 하지만 통합야당의 당권장악을 노린 친노와 486 등은 그의 상징성이 필요했고, 재판받은 것 이외에는 야권통합을 위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그를 대표로 옹립했다. 친노와 486의 야욕과 그의 노욕이 만난 불행한 결혼이었다. 

한명숙 대표는 결코 이번 사태를 수습하지 못할 것이다. 야권은 오랫동안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수첩공주라 비난해 왔다. 이것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고, 정확한 상황판단을 오도하는 측면이 있다. 사실 여기에 더 가까운 사람은 민주통합당의 한명숙 대표다. 총리시절 그의 역할은 대독총리에 매우 충실한 것이었다. 그가 총리로서 한미FTA에 항의하는 진보진영을 향해 발표했던 서릿발같은 성명은 그의 민주화 및 인권운동 이력과 온화한 그의 평소 성품에 비추어 그의 본의라 생각하기 어렵다. 대표가 된 지금은 역시 총리시절 못지 않게 대독대표의 역할을 즐기는 듯하다. 한미FTA와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 총리시절과는 거의 정반대의 입장을 발표하면서도 어떠한 내적 갈등의 낌새도 주지 않는다. 그 때도 대독이었듯이 어차피 지금도 대독이기 때문인가? 문제는, 대독대표로는, 관리자로는 총선이라는 거대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당초부터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미 잘못된 길에 들어섰고, 너무 많이 왔고, 되돌갈 용기를 내기도 어려울 상태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공천에 대한 불만은 항상 있었다. 돌이켜보면 17대 총선이 있던 2004년 공천에 대해 불만이 제일 적었다. 경선방식은 조금 어설펐지만, 소수의 전략공천을 제외하고 대부분 경선을 실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례대표도 선거인단을 구성해 순위결정을 위한 경선을 실시했다. 중앙당 공심위는 범법 사실과 같은 자격심사에 충실했고, 이번과 같은 인위적 컷오프는 하지 않았다. 사실 민주적 정당에서 중앙당이 공천심사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돌이켜 보면 중앙당의 공천권한이 커질수록, 정당의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록 공천심사에 대한 불만은 높아졌다. 김대중 총재의 지도아래서 겉으로 드러난 불만이 적어 보였던 것은 김총재 자신이 신진인사 발탁에 적극적이었고, 그의 권위로 당내 기득권세력의 양보를 종용하고 불만을 잠재웠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총재에 버금가는 대중정치인이 자리잡고 있는 새누리당의 상황이 이와 유사할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김총재와 같이 범접할 수 없는 권위가 사라진 야당에서는 또다시 중앙당의 공천권을 강화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민주주의의 후퇴이기도 하고,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한명숙 대표와 손잡고 당권을 장악한 친노와 486이 바로 그런 일을 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엿장수 기준에 맞춰 칼춤을 춘 것이다. 친소관계가 중요한 판단이었던 듯하다. 상호간 기득권 지키주기가 더 중요한 기준이었던 듯하다. 민주주의의 원칙은 공천편의주의 앞에 너무도 쉽게 굴복당한 듯하다.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중앙당의 공심위는 범죄사실이나 해당행위 여부 등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정해 자격심사만 담당했어야 했다. 자격을 충족하는 사람이라면 민주통합당의 공천을 희망하는 사람 모두에게 경선참가자격을 부여했어야 했다. 경선후보가 난림하는 것이 문제라면 경선결선제를 도입했어야 했다. 

짧은 총선준비기간 때문에 중앙당 공심위의 일정한 역할은 불가피했다고 치자. 어차피 공천에서 탈락한 당사자들의 불만은 불가피한 것이라 치자. 공천결과가 당원과 지지자들의 생각과 이토록 멀지 않았다면 그런 불만쯤은 무마하고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첫째, 민주통합당의 출발 자체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다. 민주통합당은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의 통합이다. 당밖의 많은 시민사회세력이 동참했다. 전당대회는 문성근을 제외하면 여전히 기존 민주당 인사들의 잔치가 되었지만, 한 때 이학영이 공천심사위원장으로 거론되었다. 한명숙 대표가 임종석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하고, 당 안팎의 공심위원 명단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민주통합당이 새로운 당으로 바뀌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둘째, 중앙당과 공심위 스스로 너무 기대를 부풀린 것도 한몫했다. 정체성을 어느 때보다 중시할 것이라 자랑했다. 정치신인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 공언했다. 무엇보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드릴 것이라 약속했다. 결과는 공천에서 탈락한 본인들은 물론이고 당원과 지지자들이 보기에 어느 한 가지도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공심위가 여러가지 심사기준을 말했지만 공심위가 현역을 주로 단수 공천하고, 정치 신인들을 제거하는데 사용한 주요 근거는 경쟁력이라 한다. 다른 말로는 여론조사다. 여론조사를 공천결정의 근거로 삼는 것처럼 비정치적이고 어리석은 것은 없다. 2002년에 민주당이 여론조사로 대통령 후보를 정했다면 노무현이 아니라 이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의 후예를 자처하는 자들이 여론조사를 공천심사의 핵심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가지 더 보탠다면 총선전략도 그렇다. 지금 민주당 주변에서는 한미FTA 폐기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절대적이지 않으니 MB심판을 앞세우자는 견해와 정체성의 핵심이므로 이게 우선이라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당권파인 친노와 486은 후자가 선거를 모른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를 추진할 때도 일부 당내의 반발과 진보 진영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하던 말은 여론조사상 다수 국민이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꼭 그런가? 여론조사는 참고사항일 뿐이지 결정권을 가져서는 안된다. 여론조사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출처] 민주통합당 공천의 문제점|작성자 윤석규

호남지역 현역의원들을 심사하기 위해 도입된 다면평가제는 코미디에 가깝다. 현역의원들이 동료 현역의원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동료 현역의원들 공동의 이익을 지키는데 얼마나 충실한가 여부이다. 의료사고를 규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입증을 도와야 할 동료의사들이 동료의사에 맞서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검찰과 사법부의 비리를 전담하는 공직수사비리처가 필요한 이유는 그들의 끈끈한 동료애 때문이다. 어떤 개혁적인 의원이, 동료의원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튀는 의원이 동료의원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그에 대한 다면평가가 높을리 만무하다. 부패방지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공심위원장이 동질적 집단 내에서 부패에 대한 내부자 고발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를리 없건만 이처럼 어리석은 기준을 채택했다는 것이 의아하다. 달리 말하면, 너무 가혹하게 들릴리 모르지만, 이번 공심위의 심사방식에서 숙고한 흔적을 찾기란 쉽지만은 않다. 

모발일 경선은 처음부터 적지 않은 우려를 안고 있었다. 지역구별로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총선경선은 전국이 단일선거구로 치루는 전당대회와 다르다. 조직선거, 돈선거가 되는 것이 너무도 자명했고, 진작 우려가 제기되었다. 새누리당과 동시경선 및 모바일 경선 협상이 타결되었더라면 상황은 조금 달랐을 것이다. 협상이 깨졌을 때 방향을 선회했어야 했다. 하지만 전당대회 흥행성공에 눈이 먼 지도부는 귀를 닫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그토록 소통부재를 비판했던 사람들이, 바로 그 민주통합당의 지도부가 불통에 빠진 결과다. 

지금 민주통합당은 심각한 위기다. 그 원인도 자명하다. 당권파의 항변 또는 침묵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시민통합당을 통해 당에 참여한 시민운동 출신 지도력들의 침묵은 이채롭다. 나아가 절망스럽다. 문성근 혼자 최고위원회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듯하나, 백만민란을 추진하던 열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전략공천이나 비례대표를 바라는 주요 지도력들은 완벽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남윤인순, 김기식, 최민희, 이학영, 송호창, 이용선 등 제씨가 시민운동 시절에 보여주던 기개와 비판정신을 온데간데 없다. 민주통합당의 쇄신의 동력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기득권 카르텔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에 참여한 시민운동 지도자들의 진정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총선도 문제지만 총선이후가 더 문제다. 지도부의 연이은 실책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이 과반의석에 성공하면, 아니 제1당만이라도 된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만약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얻을 경우 민주통합당은 책임론을 둘러싸고 커다란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이미 공천결과에 대해 당내 계파간 온도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크게 보아 현 당권파와 입장을 같이하는 문재인 후보는 민주당의 공천이 개혁공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통합당 지지자 일반과 비당권파의 공천평가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큰 싸움이 예견된다.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의 의회지배를 끝낼 절호의 기회가 점점 우리의 과로때무에 사라져가는 것에 분노를 멈출 수 없다. 아직은 필자도 그 일원인 민주통합당이 역사앞에 커다란 죄악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든다. 공천을 포함해 이미 총선준비는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를 잃었다. 총선이후를 준비하는 것이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모든 이들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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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3/05 [23:4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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