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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공천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주장] 기득권지키기에 바쁜 공천, 강철규표 개혁공천은 어디로 갔나
 
윤석규   기사입력  2012/02/27 [17:47]
존경하는 강철규 위원장님 안녕하십니까?
연일 수고가 많으시지요?

아직도 공천과정이 많이 남았고, 여려가지 일로 심신이 피곤하실텐데 이렇게 제 말씀을 드리게 되서 죄송합니다. 아시다피시 저는 안산단원을 선거구에 출마하기 위해 민주통합당 공심위에 공천신청을 했고, 공심위의 예비심사에서 탈락한 무명의 정치신인입니다. 경선참여 권리 자체를 박탈당한거지요. 당헌당규에 따라 재심청구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저는 재심청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공심위의 결정에 승복해서 아닙니다. 현 민주통합당 지도부에 대해서 일말의 희망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민주통합당의 당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민주통합당을 사랑합니다. 따라서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글을 올립니다.

돌이커보면 위원장님과의 인연이 참 긴 듯합니다. 85년 쯤인가요, 제가 20대의 시민단체 초짜 실무자일 때, 위원장님은 해외유학을 마치고 산업경제연구원에서 일하고 계셨는데, 제가 기획한 토론 프로그램에 위원장님을 발표자로 모셨지요. 첫번째 만남입니다. 조용하면서도 강단과 설득력을 함께 갖춘 위원장님의 발표가 인상깊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지먼에 위원장님의 글이 실리면 빠뜨리지 않고 주의깊게 읽었습니다. 특히 당시 진보적 경제학자들이 한국자본주의 붕괴론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던데 비해 위원장님은 한국경제에 매우 비판적이면서도 실증적인 분석을 많이 시도하시는 모습이 돋보였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안산으로 활동무대를 옮겨 '안산아침논단'을 만들었던 97년에 위원장님을 다시 강사로 모셨습니다. 명시적으로 IMF위기를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위기의 증후군을 지적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국민의 정부에서 제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실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 부패방지위원회 설립과 관련해 시민사회 관계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위원장님을 다시 뵈었습니다. 국민의 정부의 미진한 재벌개혁에 대해 강한 실망감을 토로하셨고, 일개 행정관으로 제가 어찌할 도리는 없었지만 위원장님의 강직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위원장님은 국민의 정부에서 부패방지위원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2002년 국민경선을 마치고, 노무현의 후보의 비서실 정책팀장으로 일할 때 후보를 모시고 부패방지위원회를 방문했습니다. 한국의 부패지수를 국민소득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공약으로 삼으라는 조언을 해주셔서 노후보가 매우 좋아했었지요. 마지막 인연은, 제가 원내대표실 기획실장으로 있었고, 위원장님은 참여정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계실 때 공정위의 권한강화와 관련된 회의에서 뵌 것으로 기억합니다.

긴 만남을 거치면서 위원장님에 대해 갖는 인상은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선비의 모습이었습니다. 부드러움 속에 강한 원칙과 개혁에 대햔 의지를 감추고 계신 모습이지요. 그래서인가요, 이번에 위원장님이 민주통합당의 공심위원장에 내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매우 기뻤습니다. 저도 심사의 대상이 되겠지만, 저와의 개인적 인연을 떠나 민주통합당 승리를 위해 커다란 역할을 하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정체성을 중시하겠다는 위원장님의 말씀은 제 믿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위원장님이 직접 내셨다는 세가지 질문도 신선했습니다.

드디어 공심위 심사 일정이 발표되었습니다. 공천신청자가 3인 이상일 경우 공심위 심사를 통해 원칙적으로 2인만 경선을 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눈에 띠었습니다. 이는 현역의원을 인위적으로 공천을 배제하기도 어렵고, 현역의원 1인과 다수의 정치신인이 경쟁하면 현역의원의 경선승리 가능성이 높으므로, 현역의원과 정치신인 1인의 경선대결구도를 만들어 경선을 통한 교체를 유도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방식이었습니다. 저도 특별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습니다. 정당에서 일반적으로 편의를 위해 소위 컷오프(cut-off)는 것을 종종 시행해왔으니까요.

하지만 사실 여기에는 커다란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공심위가 정한 일정한 자격요건을 정하고, 여기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걸러낸다는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선 참여권리를 정해진 숫자에 맞춰 제한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며, 민주주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입니다. 일대일 구도를 만드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공심위의 자의적인 심사가 아니라 결선경선제도를 통해 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일단 자격심사를 통과한 예비후보를 경선에 모두 참가시키고, 1위와 2위에게 결선경선을 시키는 것입니다. 모바일 투표이므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공심위의 생각이 짧았거나 편의주의와 타협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원칙주의자인 위원장님 답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봅니다.

사실 저도 이 점에서 대해서는 깊이 반성합니다. 왜 공심위의 발표가 나왔을 때 이런 점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지 않았는가 후회가 됩니다. 어쩌면 나는 2인 컷오프는 충분히 통과할 수 있고 나만 통과하면 그만이라는 얄팍한 생각과 평가의 객관성이 관철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이 빚어낸 오판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깊이 반성합니다.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현역의원들을 평가하면서 다면평가를 도입한 것도 아주 잘못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원들간의 평가는 민심과 일치하지 않거나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의원들의 특권과 이익을 배반하는 주장을 하는 의원은 동료의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못받습니다. 그 것이 민심의 요구라 해도 말이지요. 지금 경기도의 한 의원의 공천배제를 둘러싸고 의원들로 구성된 당내 공심위원과 당외 공심위원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려있는 것은 그 증거입니다.

공천신청서를 제출할 때 즈음 구체적인 심사기준이 발표되었습니다. 여론조사 30%에 정체성 20%, 면점 20% 등 과거에 비해 진전된 심사기준이라는 언론의 평가가 있었습니다. 여론조사를 포함하는 것은 철저히 기득권자에게 유리한 기준이지만 과거 50%에 비해 낮췄다는 점에서 그리 평가하는 듯합니다. 어쨌든 저는 공천신청서류에 여론조사에 사용할 대표경력으로 노무현 대통령 캠프 상황실장과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을 적어 넣었습니다. 당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임의적이거나 1년이하의 한시적인 조직의 경력은 사용할 수 없으며, 그런 기준에 따라 노무현 캠프 경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겁니다. 당에 물으니 많은 공천신청자들이 1~2개월에 불과한 박원순 시장 선대위 경력이나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 경력 등을 남발해 이로인한 불공정을 막기 위한 것이고 이미 공천신청안내문에 적혀있었노라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노무현 당시 후보의 가능성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던 2001년 4월에 청와대를 사직하고 노무현 후보의 경선준비 조직인 일명 금강캠프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상근 정책특보를 거쳐 상황실장으로 일한 기간 만도 꼬박 1년입니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된 후 노무현 대통령 가신그룹과의 불화로 참여정부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사실은 제 정치경력 중 가장 자랑스러운 부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참여정부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도, 다시말해 그 보상을 받아지 않았다는 것도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의 경력을 앞서 말한 다른 경력들과 동일한 기준에 따라 처리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경선을 준비하면서 저도 여론조사를 해봤습니다. 물론 노무현 후보 경선캠프 상황실장 경력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경력이 여론조사에서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저로서는 새로운 선거구에서 시작하는 것인 만큼 인지도가 낮은 것을 걱정했는데 제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위원장님도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어쩔수 없이 위원장님께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예외를 둘 수 없다는 말로 제 탄원은 일언지하에 거부되었습니다.

여론조사의 결과에 대해 안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예비심사에서 탈락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왔습니다. 하지만 오랜 만남을 통해 알고 있는 위원장님에 대한 신뢰 덕분에 또 믿기로 했습니다. 외부공심위원들의 면면도 제 믿음을 부추겼습니다. 여론조사가 30%에 불과하다는 점도 억지로 저를 안심시키는 요소였습니다. 원칙은 2인 경선이지만 경우에 따라 3~4인으로 경선을 할 수 도 있다는 소식도 저를 든든하게 했습니다. 열심히 선거인단을 모으고 경선을 준비했습니다.

지난 2월 22일 면접을 보기위해 당사에 갔습니다. 1분의 모두발언과 예상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드디어 면접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저에게는 아무도 추가질문을 하지 않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 뿐이 아니라 이번에 탈락한 세사람은 이미 공심위원들의 관심 밖이었던 것같습니다. 면접이 끝날 무렵 위원장님이 직접 제 시민운동 경력까지 말씀하시면서 안산을 위히서는 무슨 일을 했는지 물으셔서 기쁘게 답을 했습니다. 경선참가자가 원칙은 2인이지만 상황에 따라 늘어날 수 도 있다는 위원장님의 마무리 발언에도 용기를 얻었습니다.

24일 발표된 결과는 아시는 것처럼 안산단원을 선거구는 저를 포함해 3인의 탈락과 2인경선으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공심위가 심사내용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저는 저의 탈락 이유도 알지 못합니다. 여론조사에서 뒤졌기 때문인지, 공심위가 제시한 정체성과 당기여도, 면접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인지 알지 못합니다. 위원장님이 말씀하신 재벌개혁과 제가 동떨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한미FTA에 대해서 제 생각이 미온적이라고 보신건지, 열린우리당 시절의 원내기획실장과 민주당 정치개혁특위 사무처장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대위 활동 만으로는 저의 당에 대한 기여도가 부족하다고 보신건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많은 선거구에서 3인이상을 경선참가자로 정했는데 왜 굳이 안산단원을에서는 2인만을 경선참가자로 정했는지도 모릅니다.

일부에서는 제가 정치적으로 찍혀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몇해 전 한 인터넷 매체에 '노무현의 불행은 삼성에서 비롯되었다'는 글을 기고한 적인 있는데, 이 글이 지금 당을 장악한 소위 친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거라는 겁니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 밖에도 모 인터넷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소위 486을 포함해 지금 당의 실력자들을 비판하는 글을 종종 썼는데 그게 문제가 되었을 거라고 합니다. 이 역시 믿기 어려운 이야기 입니다. 제 칼럼을 철회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오로지 사랑하는 민주당을 위한 고언이었고, 만의 하나 당내 공심위원들이 그랬다 하더라도 당외 공심위원들이 균형을 잡아주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강철규 위원장님!

이런 편지로 그렇지 않아도 힘든 위원장님을 더 곤란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일개 무명정치인인 제가 경선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것은 당으로서는 그리 큰 일도 아니고 여론이 주목을 받는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억울함을 가벼이 여겨서는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심위 결정이 번복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제 경우가 참고가 되어 앞으로 민주통합당 안에서 민주주주의 원칙이 확고히 지켜지고, 민주통합당이 더 발전하며, 국민의 사랑을 받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이제 불과 1/3정도 발표했을 뿐이지만 공심위의 발표에 대해 여러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제 경우를 차지하고라도 저도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기득권지키기라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년전에 있었던 박재승식 공천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나름대로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입니다. 앞으로 정체성 기준에 부적합하다고 비판받은 현역의원 몇 사람의 공천을 배제하는 것으로 무마하기에는 너무 나갔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강철규표 개혁공천을 보여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2012. 2. 27
안산단원을 국회의원 예비후보 윤석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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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2/27 [17:4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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