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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개혁세력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
[논단] 조지 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 한국 진보에게 보내는 메시지
 
윤석규   기사입력  2011/04/14 [17:10]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었습니다. 그의 책을 손에 잡은 것은 내쳐 노느라 내평겨쳤던 입시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였습니다. 그의 문학적 향기보다는 그의 영어를 필요로 한 것이죠. <동물농장>은 여러 매체 심지어 당시 어린이들이 즐겨보던 만화잡지에까지 소개되었던 터라 줄거리는 대강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스탈린주의 비판을 반공주의로 오해한 당국이 진짜 사회주의자인 그의 책이 알려지는 것은 전혀 제지하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하면 코메디입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사전에만 기대서 그의 책을 독파해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동물들의 행태를 표현하는 온갖 의성어와 의태어는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제된 영어는 실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의 책을 한 쪽 한 쪽 넘기면서 영어의 묘미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습니다. 동물농장의 구성원들은 모두 지켜야할 7계명을 농장벽에 적어 놓습니다. 그 가운데는 '어떤 동물도 술을 먹어서는 안된다'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계명이 있습니다. 돼지들이 농장에 숨겨진 위스키를 나누어 마시고 취한 밤 앞의 계명에는 어느새 '지나치게'(to excess)란 말이 붙습니다. 나머지 계명도 이런 식으로 수정을 거치다가 돼지들에 의한 새로운 압제가 완성되어 갈 즈음 마침내 마지막 계명에는 '그러나(but)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는 말이 붙습니다. 우리말 어순으로는 가운데 새 어절을 끼워넣어야 하기 때문에 벽에 씌여진 계명에 손을 대기가 쉽지 않은데 영어 표현으로는 맨 뒤에 'to나 but'과 같은 관계사를 붙이는 것으로 간단하게 의미가 뒤집어지는 걸 보고 무릎을 친 기억이 납니다. 

영어공부 욕심으로 시작한 독서였지만 마지막 장을 넘길 즈음에는 서서히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반공교육의 세례를 받은 덕에 일차적으로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을 눈치챘지만 여기서 나아가 모든 전체주의,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압제를 비판하는 보편적 비판지성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압제에 저항하는 원리로서 '자유와 정의'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에 공감했습니다.

그의 사상적 전환기를 대표하는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1936년에 쓰여진 책입니다. 한 진보단체의 요청으로 대공황기이던 당시 영국 북부공업지대 실업자들의 실상을 취재해 집필한 것입니다.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당초의 요청에 충실한 르포르타주로서 실업자와 탄광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압권입니다. 더불어 "우리 모두가 지금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은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다"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충분히 읽을만 합니다.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2부는 매우 논쟁적입니다. 2부는 스스로 밝혔듯이 상류 중산층의 하급에 속하는 그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자신을 낳고 길러주고 교육시킨 계급의 편견을 버리고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변신했는지를 밝히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하급 상류층으로서 선택한 버마의 식민경찰 생활을 정리하면서 번민 끝에 얻은 깨달음을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는 한 마디로 제시합니다. 아울러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부르조아 계급에 속하고 그 속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울타리를 깨고 나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냄새에 대한 기억'을 매개로 설득력있게 제시합니다. 그 과정에서 반동적인 부르조아는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진보적이라하는 부르조아 출신 지식인들이 입과 머리로만 혁명을 할 뿐 자신들의 삶조차 변화시키지 못하는 속물근성에 대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댑니다. 한 대목을 보면 나 자신부터 뜨끔합니다.

"중산층인 사람이 사회주의를 받아들여 공산당에까지 가입했다고 하자.(중략) 선거에서 노동당에, 아니면 가능한 경우 공산당에 표를 던진다는 것 말고 그에게 무슨 변화가 가능할까? 그가 여전히 습관적으로 자기 계급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그와 뜻을 같을 노동 계급 사람보다는 그를 위험한 '과격분자'라 여기는 같은 계급 사람과 있는 게 훨씬 더 편하다."

마치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입으로는 교육평등을 말하면서 '아이들이 원해서'라는 변명으로 자신들의 자녀는 외고 보내고 조기유학보내는 '강남좌파'를 말하는 듯합니다.

실재하는 그리고 뿌리깊은 계급의 차이를 - 억압이 아니다 - 마치 없는 것처럼, 또는 없앨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감상적 시도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합니다. 요크공 - 최근 개봉한 영화 <킹스 스피치>의 주인공 조지6세의 즉위전 이름 - 추진했던 계급통합 여름캠프가 얼마나 무의미할 뿐더러 위선적인지를 지적하고, 자신이 계급적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하면서 심지어 프롤레타리아를 영웅시하는 감상주의자가 현실과 부딪치면서 오히려 반동화된 사례를 꺼집어 냅니다.

논지 전개상 부득이하게 자기 이야기로부터 출발했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더 핵심적인 부분은 그 다음에 이어집니다. 그는 1부에서 묘사한 비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왜 영국에서는 사회주의가 호감을 가진 사람은 많으나 10년전에 비해 폭넓게 지지를 받지 못하는가,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파시즘에 기우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사회주의자들의 그릇된 행태에서 찾습니다. 마치 기독교의 경우처럼, 사회주의의 신봉자들이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지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회주의가 중산층 그리고 '배운' 사람들의 이론으로 비친다는 것입니다. 그는 '정반합'이니, '수용자에 대한 수용'이니, '부르조아 이데올로기'니, '프롤레타리아 연대'니 하면서 수학공식보다 어려운 전문용어를 남발하는 중산층 사회주의자에 대해 독설을 퍼붓습니다. 진짜 노동자들은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으며, 혹 노동자출신 중에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결국 노동자로 머물지 않고 노조간부나 정치인으로 변신한다는 점도 아울러 꼬집습니다.

80년 우리 운동권을 곧 바로 연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사구체논쟁을 비롯한 많은 난해한 논쟁과 학출임을 바로 알아챌 수 있는 운동권 특유의 억양과 용어는 실천을 강화하기보다는 대중을 멀어지게 했을 뿐입니다. 그 때의 경험과 기억이 너무도 강렬했던 것일까요, 지금도 일부 진보진영 인사들의 글과 말에서는 그 분위기가 남아있습니다.

오웰이 비판하는 중산층 사회주의자들의 특별한 취향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요즈음 논란인 강남좌파를 떠올렸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는 말 자체가 영국의 온갖 과일 주스 애호가나 나체주의자, 샌들 애용자, 섹스광, 퀘이커 교도, 자연치유 사기꾼, 평화주의자, 여성주의자를 다 끌어들이는 자력을 지녔다는 인상을 받는다."

1930년대 영국이라는 맥락을 무시하고 오웰이 괴짜라 묘사한 용어규정에 얽매이거나 상처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진보라 하면서 피억압자의 삶과는 유리된 독특한 관심에 사로잡힌 중산층 진보들의 속물근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논지니까요. 이 부분은 미국 민주당에 빗대 오늘날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 공희준의 지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미국 국민들의 평균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라, 히피 편드는 정당, 동성애자 옹호하는 정당, 마약쟁이 두둔하는 정당, 그리고 낙태 찬성하는 정당, 문자 그대로 어떠한 주변적인 문화적 이슈들, 비유하자면 개인의 취향과 관련된 문제들만을 중시하는 정당이 돼버렸다는 데 있었습니다."(공희준 김용민 좌담 中)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으로 이러한 민주당의 사슬을 끊으려 시도했던 것이구요.

수없이 쇄신과 개혁을 외쳤을 뿐 '민생'을 챙기지 못한 참여정부, 하다못해 말로라도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기 위해'라는 목표도 세우지 못하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 아마도 여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도시 중산층일 것이다 - 정치개혁을 창당의 대의로 내세운 열린우리당,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를 계승한다면서 우리사회의 핵심문제 가운데 하나인 호남차별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오히려 '난닝구'라는 조롱을 그치지 않는 국민참여당, 총선에서 뉴타운에 덩달아 춤추고 4대강은 반대한다면서 어차피 오지도 않을 영남표를 잃을까 두려워 신공항은 반대하지 못하는 등 토건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민주당, 이 모두 오웰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자들 내에 만연한 진보를 기계와 동일시하는 당시 풍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사회주의 - 기계 - 러시아 - 트랙터 - 위생 - 기계 - 진보'라는 등식에 사로잡혀 기계문명에 적대감을 품은 사람들을 사회주의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지요. 후에 <1984>를 쓰는 작가의 생각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엿보입니다. 

누구보다 강하게 부르조아를 비판하면서도 오웰은, 다소 무의미하고 기계적인 부르조아 골탕먹이기는 문제라 주장합니다. 오히려 '빈곤은 누구에게나 빈곤'이라는 핵심적인 사실로부터 주위를 분산시킬 뿐이라는 겁니다. 그가 속물근성에 빠지지 않은 작가로 보는 D.H.로렌스가 <채털레이 부인의 사랑>에서 부르조아를 모든 원시적 생명력을 상실한 '고자'라 한 것에 대해 '나는 고자 아닌데, 어쩌란 말인가?'하면서 상당한 섭섭함을 토로합니다. 그는 이런식의 '프롤레타리아 상투어'가 위험하다고 하면서, 누굴 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그 사람의 병이 치유 불능이라는 말을 하면 된다는 말을 하면 된다고 적습니다.

이러한 모든 오류가 결국 민주적 사회주의 적이며, 사회주의 운동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영국은 파시즘으로 흘러갈 것이라 경고합니다. 

로렌스에 대한 그의 불평은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사회주의 운동이 변증법적 유물론자들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되고 압제자에 맞서 싸우는 피압제자의 리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너무 늦기 전에, 피착취 중산층이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상 때문에 압제자의 편에 가담하지 않도록 그들을 포섬해야 한다고 주장힙니다. 그는 계급적 차이 - 영국식 맥락 - 를 버리라고 하기보다 연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해관계가 같은 협력은 언제나 가능하며 연합해야 할 사람들은 출신계급과 관계없이 '사장에 굽실거려야 하고 집세 낼 생각을 하면 몸서리쳐지는 모든 이들'이라 주장합니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오웰은 삶과 생각이 유리된 강남좌파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연대해야 할 가치는 '계급의식'도, '프롤레타리아 연대'도 아닌 '정의와 자유'라 선언합니다.

우리 진보가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입니다. 특히 최근 진보개혁세력의 연대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논의를 생각할 때 꼭 우리를 위해 준비한 메시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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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4/14 [17:1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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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맥가이버 2011/05/12 [00:11] 수정 | 삭제
  • 이런 식으로 건드리면 기록하지 않겠읍니다! (상기의 레터는 내용모두가 에이라는 레터하나로 비표된 상태임)

    상기와 유사한 기록들로, 보복을 하든 해꽃이를 하든, 그것마저 그들의 자유입니다!
    이런 글이 틀렸고, 누구를 음해하기위한 글이였다면, 당연히 그 책임도 그런 문제를 야기한 자가 책임 져야 되는 숙명이 아니 겠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현상이고, 그 속에 살고 있는 국민이기에, 당연이 책임과 본분 그리고 관계성에 대한 책임도 있는 것 인줄 알고 있으니까요! 말하지 않는 국민들도 그렇게 존재 하며 생활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누구에게 보냄 것 도 아니고, 나의 컴내에 있는 사항을 건드린다는 것은, 본다는 입장과는 다른 것 이니까요!
    보내지도 않은 사항은, 그냥 쥐도 새도 모르는 상태에서 흔적 없이 보고서, 바름을 취 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부모가 자녀들의 일기장을 보는 것과도 같은 사항이니께요!

    주홍글씨 a
    에 기록했던 내용을 변형하면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말없이 건드림 없이 못 본 듯이 그냥 해 온 대로, 지극정성으로, 나름대로, 위한다는 마음으로, 일상에 임하면 되는 게 아닙니까!!! 표현 방식의 차이도 있었으니께요!!! 국민은 동물처럼 살아도 기쁨과 보람이라는 가치성에 일상에 임하면 됩니다! 외부성에의한 발생만을 바르게 하기 위하여도 차분하게 일상에 임해야만, 바르게 하는데도 도움 될 것 입니다!
    -------------------------
    ---------------------------이런 상태들을 기술한것은 스스로 둘러보는 계기로 나는 어떤 상태였을까 생각하고 시간성에 무엇이 길이여야 할까라는 명제이지, 국민를 잡아서 막음 조치 할려는게 아니라는 점, 국민은 믿음으로 있어야 됩니다!
    외부 침해성 요인을 인지하고 식별하여 국민들이 지켜 내는 모습이 필요하기에의 기록입니다!
    ----------------------------
    이런 상태를 얍쌉빠르게 이용하는 나라가 있기에, 그만 하면 됐다라고 기록 했었음!
    국민은 지구마을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만들고 이룩하여 여기도 방문해줘 여기도 둘러봐줘하여 유명하고 인본성에 마음으로부터 존경과 기쁨으로 공구로 상품으로 기술교육지원 등으로 인류의 길에 있도록 함 입니다!

    상기 침해성은 일본성이였는데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쉽게 이해 될 것 입니다! (과거에 창씨개명이 추구하던 사항과 피카츄라는 원리, 일본씨름의 원리등 게임에도 많은 일본 특성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과서에 명기된 침략침해의지를 담아 교육하기에, 이렇게 지구마을인들도 알 수 있도록 공개 기록해도 되는 사항이 됩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일본인특성에 일본은 침몰하게 되어있음을 인본특성으로 알 수 있기에, 뉘우침이 있을때까지, 계속 중국인들의 붉은 옥수수밭과 미국이라는 나라에 현상에 일본인들의 침략성에 미국민들의 인식경향과 대책 뭐이런 정도만이라도, 정확하게 작용인원들 관계와 형성원리 조직을 드러 내는 것만으로도 경제 순환성에서 배제 될경우에 현상등에 언지 만으로도 충분한 현실이 됩 것이기에 입니다!!!).

    핵심만 찍힌 상태와 경향에서,( 얼마나 철두철미한 침해 연구였으며 시행방법에 철저함을 보고 놀라지 않을 한국인 몇일 까요! 금융대부업,씨큘티,등은 기록하지 않고도?!.)
    노무자을 대통령으로 하면서 한 순간에 이나라는 걷잡기 여려운 상태의 경향에 들어 섰었읍니다!!! 그 핵심이라는 사항을 보면 국방에 남이장군을 않히려는 의도성에 해결 할 핵심이 지금도 서로 튀각거리도록 유도하여, 통일 돤 한국으로 대륙으로, 인원과 자원을 확보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경계하는 상태 경향이 지금도 해결해야 되는 사항으로 있으며,
    오늘에 이르도록한 핵심 정신력인 교육에 대한 정신성이, 아룸다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룸다운버섯나라의 의도경향으로 치달리고 있는 상태경향의 해결이 두 번째이며,
    피카추라는 원리를 적용한, 일하는 인원들을 붙잡아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경향이 세 번째 해결할 과제이며, 정치인들은 인기라는 선동성을 버리지 않고 품위와 국가요직인이라는 일하는 인원임을 망각한 언행태에, 선거에서 피카추의 원리에 죽어가는 정신성이 네 번째 해결 할 과제이며, 그런 언행에 앞잡이가 된 한국인의 정신이 아닌 마이크를 들고 연기하는 일부 인원의 문제성이 그것입니다!
    김신조가 말하는 적화 통일과 일본인의 식민지화 침략정책과 꼭 같은 것은, 일본인들은 영세 중립국임을 공고하게, 있고 싶어서, 일 겁니다!!!

    이해를 됩기 위하여 이렇게 보십시요!!
    일본을 한국화 하려면, 일본인들의 금융관계 핵심인원에 합자회사로 같이 이룩하는 형태의 사업을 진행하고, 시간경과 고정 관념이 작용 할 때 임의로 작동하여 금융을 손아귀에 잡으면, 임의대로 흔들 수 있읍니다!
    다음에 계속 된 진행이 되게 하기 위하여는 일본인들과 같이 만드는 영상물에 관여하여 일본인들의 정신상태가 한국인의 정신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일본인중 영상 연예언론인들에게 이런 것을 공공화하면 얼마를 준다고 하여 주요 문무성요인과 정부요인들을 한국인화하여 한국인에 반하는 자율능력인을 오염더럽힘으로 일본인의 언론에의하여 스스로 시들고 제거되게 만들어서 일본인들이 이룩하려는 것이 진행되지 않도록 작동하는 언론과 인워들을 대량화경향으로 인터넷과 언론인들을 계속관리하면 됩니다! 돈얼마를 준다는데 국가인들에게 가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본국민이 옴싹달싹못하게 하나씩하나씩 법률로 옥 죄어놓습니다, 스스로 붕괴될 소지들을 만들고 옥죈 상태들을 근거로 검찰과 언론을 동원하여 수조 벌어드리는 것은 땅 집고 헤엄치기보다 쉬운 일이고, 사회분위기를 일하지 않는 분위기로 돈벌려는 심리야기에 제일이기에, 정책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업을 잡고 돈벌고 하여 상품에 대한 구매력에서 엿 경향 만들기도 잘 될 테니께요? 그림에서 휘어 잡는 것만으로도 작동시킬 수 있고 인지 되겠지만,!
    국민이 인식에서 흘려 지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언론요소들을 장악해 나가면 됩니다!
    그런 시행에 조사나 손대려는 인원은 상기에 준비된 연예 언론 정치인들에 의하여 스스로 분리 제거 되게 할 수 있으니까요!!!
    상의 연락사항은 수많은 방법으로 각자의 맡은바 일에 경향으로 미래와 현재 등에 비표로 가능하니까요!
    우리나라사람이 일본국의 장군이 되도록 경향 이끌고, 모든 상품에 이미지는 우리것이 제일좋다고 이미지화 경향하며 일본인들이 만드는 이미지에는 더럽힘과 조잡함과, 옹이짐과 태고의 원초적인 상태을 흠모하게 하여, 식의주생활도구등에 이미지 말살을 기도하고, 이끌며, 죽지 않을 상태로, 수탈하여, 노예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밑빠진 상태의독에 물붇기로 만드는 것, 입니다! 싸움으로 형태의 진행으로 견제와 균형이라 무마시키면서, 마음속에 싸움에 익숙한 이미지를 형성하여, 싸울 수 있는 준비를 일상화 하여 둠니다!
    사건사고 관리는 경향으로 기존보다 진행 된 숫자로 관리 함으로써, 인식소를 지나칠 수 있읍니다! 중요기관과 중요기업에 대할경우에,
    볼 때는 위하여, 받듬으로, 자라확보에 주력하되, 드러나면 어떻게 되는지 스스로 책임지고, 전체를 살려야함도, 숙지하여야 됩니다! 기자들의 언지에 경향에 나서지 않으며, 집단적인 언행만이 살아 남을 수 있음을, 명심할 수 있 길 , 그리고 행운을 기원합니다!
    일본은 이제 한국 것 입니다! 아직도 할 일이 태산처럼 많지만, 교육으로 공고하게 이어 이룩케 하여야 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