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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kDoo의 소름돋기] 反轉의 미학
영화의 재탕은 재발견의 동력, 이라크파병재탕 반전은 없나
 
김정곤   기사입력  2003/10/01 [11:53]

국내에 반전 열풍이 분건 아마도 ‘유주얼 서스펙트’ 때부터 였던 것 같습니다

'범인은 외다리다'... 라는 외침이 지금도 전설이 되어 떠돌고 있으니까요.

▲반전영화의 대명사인  식스센스     ©씨네서울
이후 '식스 센스'의 출현으로 영화 내에서의 반전은 거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 버렸지요. 상상을 초월하는...식스 센스를 능가하는...놀랄만한 등등 갖가지 수식어들을 붙여 놓는 것이 일종의 트랜드가 되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사실 '유주얼 서스펙트'의 결말은 모든 관객을 엿 먹이는 놀라울 만한 반전이었지요. 그런데 그런 놀라운 반전이 유주얼 서스펙트로부터 시작된 건 아닙니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경우 극작가 데이비드 마멧의 '호미사이드'와 많이 닮아 있지요. 유주얼 서스펙트의 경우 영화 전체가 거짓말이었던 데 비해 호미사이드는 영화 전체!가 잘못된 정보로 인해 파멸로 치달아 가는 경우죠. 뭐 마지막 결말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호미사이드는 그리 유명한 영화가 아니니까요.(다른 예도 있겠지만 제가 처음으로 놀라운 반전이라고 느낀 영화가 호미사이드거든요)

또한 식스 센스의 경우에도 이전 '카니발 오브 소울'이 그 전신이라 할 수 있겠죠. 60년대에 나온 이 영화는 내용이나 결말 면에서도 식스 센스의 멜로를 가뿐히 넘어서 버리지요. 한가지 더 얘기하자면 반전과는 별 상관없을지도 모를 영화이지만,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역시 이전에 나온 '라스트 맨 언 어스'와 거의 닮은꼴이지요.

자 이쯤 되면 기존의 영화들이란 것이 그리 창조적이지 못하다고 느끼겠지요. 이미 전례가 있었고 거기서 그리 크게 나아가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또한 초창기에 나온 이들 영화들도 결국에는 문학 작품들에서 이미 사용됐던 것들이니 굳이 창조 운운할 필요는 없겠네요. 어차피 결국엔 다 재탕에 재탕이니까요.

얼마 전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디 아더스'가 개봉되었을 때도 말들이 많았죠. '식스 센스를 베꼈다'느니 '결말이 똑같다느니...'. 사실 제가 보기에 디 아더스는 식스 센스와는 전혀 다른 영화였는데도 말이죠. 식스 센스가 멜로를 중심에 두고 소통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 반면에 디 아더스는 귀신 나오는 집과 고딕의 전통에서 소통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데 말이죠. 사실 디 아더스의 반전은 마지막 플래시 백으로 들어 나는 소름 끼치는 사고가 아니라 영화 제목 자체였습니다. 인간 전체를 타자(괴물/유령)로 내모는 정말 소름 끼치는 결말이었지요. 그러니까 사실은 반전 따위는 없는 거죠. 어차피 다 까발려 놓고 하는 건데 무슨 반전은...

▲영화 디아더스중 한장면     ©씨네서울
앞서 말한 것처럼 디 아더스 역시 귀신 나오는 집의 전통에 서서 전체 이야기를 풀어가지요. 결국 재탕이라는 얘깁니다.

이제 보니 모든 창작품들이 결국 재탕, 삼탕 또는 잡탕으로 느껴지는군요. 그런데 이런 재탕들이 나쁜 걸까요? 누가 누구 작품을 베껴서 안 좋다느니, 이미 예전에 다 써먹은 거라느니...국내에서 '세이 예스'가 개봉했을 때 사람들이 기겁을 했었지요. 다름 아니라 로버트 하몬의 초현실적 호러 '힛쳐'를 그대로 가져 다 썼었거든요. 게다가 안병기 감독의 '폰'이 개봉  했을 때도 인터넷 게시판에서 난리가 아니었죠. 링을 갔다 썼다느니, 이 영화 저 영화 짜 집기라느니... 사실 세이 예스의 경우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베꼈었죠. 오죽하면 힛쳐에서 사라졌어야 마땅할 차량 액션씬까지 그대로 가져 다 썼으니까요.

그런데 단지 영화의 몇몇 장면들 또는 틀을 가져 다 썼다고 해서 영화 전체가 욕을 먹어야 했을까요? 영화의 구성이나 미술들 그리고 연기에 대한 아무런 평가도 없이 몇몇 장면을 갔다 썼다고 해서 무조건 욕을 먹어 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세이 예스의 경우 거의 만장 일치로 욕을 먹고있는 형편인데 중간의 차량 추격씬은 힛쳐의 황당한 액션씬에 비해 잘 마무리 된 장면이죠. 영화에 잘 부합되니까요.

▲영화 폰 중 한장면     ©씨네서울
뭐 비록 스필버그 감독의 초기작 '듀얼'의 이미지를 차용하기 했지만 말이죠. 또한 박중훈의 연기 역시 초반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만, 후반에 가서는 나름 데로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지요. 특히 추상미를 머리를 들이대며 날리는 대사는 아주 좋았다고 생각되며 안병기 감독의 폰 역시 '링'과 '강령'의 장면들을 갔다 썼다는 말을 듣지만 은서우의 연기가 그만큼 받쳐 줬기에 가능했죠.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의 이미지 역시 지금까지 검은 고양이를 차용한 장면 중에 가장 멋진 씬중의 하나로 남을 만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웨스 크레이븐의 왼편 마지막 집이 베르히만의 처녀의 샘을 베꼈다고 갖은 멸시를 받았다더군요. 로저 에버트의 경우는 영화의 스토리조차도 맘대로 해석해서 씹어 버렸죠. 영화를 제대로 봤는지도 의문입니다.

저는 지금 무분별한 베끼기에 대한 옹호를 하는 건 아닙니다.

영화에 대한 판단은 현재 사회 관계나 시스템 그리고 영화 내에 심어져 있는 자료들을 근거로 삼아야지 '이 이야기는 또는 이 화면은 예전에 누가 써먹었던 거야 그래서 이 영화는 꽝이야'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영화 자체의 텍스트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단지 이전 작품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나 내용들이 겹쳐진다고 해서 과거의 작품에 빗대어서 영화를 풀어 나가는 건 올지 못한 행위라는 거죠. 뭐 재탕 영화를 씹겠다면 현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최악의 영화 리스트에 올라가야 하겠네요.

영화의 재탕은 재발견의 다른 모습 일수도 있습니다. 예전 귀신 나오는 집 영화들이 단지 귀신쑈를 보여주거나 또는 가부장제 사회의 붕괴와 복원에 관해서 얘기하는 반면 디 아더스의 경우는 그런 가부장제 신화가 사실은 환상이었을 뿐이라고 기존 가치 체계들이 사실 괴물성 일수 있다고 한걸음 더 나아가지요. 유주얼 서스펙트 역시 기존의 필름 느와르나 범죄물의 단순 파멸형 결말을 농담으로 넘겨 버리는 과감함을 보여 주고요.

바로 재탕 영화들의 장점이지요. 기존의 고립되고 이제는 진부해진 내용들을 다시 새롭게 포장해서 또 다른 가능성들을 열어 준다는 거죠. 매트릭스 같은 잡탕 영화도 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으니 말이죠.

아 주성치의 영화들도 빼놓을 수 없겠군요...^_^

재탕 삼탕 잡탕이라도 좋습니다
영화에 그 만한 진정성이 보인다면 그 만큼의 대우를 받아야 겠지요. 또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만큼의 욕을 먹어야 하구요. 우린 어쩌면 아무것도 새로울 게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걸 만들어 낼 수는 없다면 새로운 걸 찾아낼 수는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지면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지난 대선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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