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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전쟁총리', 에후드 올메르트
[최을영의 시사인물 포커스] 정치야욕으로 가자를 지옥으로 만든 사람
 
최을영   기사입력  2009/01/28 [17:02]
학살
 
사망자 900여 명, 부상자 3500여 명. 2008년 12월 27일 오전 11시 30분에 시작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폭격과 지상군 투입으로 희생된 팔레스타인 사람들 수다. 2009년 1월 11일까지, 16일 동안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놀라운 사실은 사망자의 대부분이 민간인이고, 그중 3분의 1이 어린이란 것이다. 서울의 반밖에 안 되는 면적에 무려 150만 명이 살고 있는, 더구나 이스라엘의 봉쇄조치로 피난마저 갈 수 없는 가자지구에 쏟아진 폭탄은 학살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학살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비명 속에, 계속 진행 중이다.

이스라엘의 폭격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1월 8일에는 가자지구 북부에서 유엔의 구호물자를 운반하던 트럭이 이스라엘군 탱크의 폭격을 맞아 운전사 1명이 숨졌다. 1월 6일에는 피난민들이 대피해 있던 유엔학교를 공격해 43명을 살해했다. 어린이가 대부분이었고, 유엔학교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미 이스라엘군에 통보해 폭격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는 요청을 계속 해왔던 터였다. 처음에 이스라엘은 이를 두고, 유엔학교에서 하마스 측의 로켓포 공격이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자 "실수"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이 민간인들을 한 건물에 몰아넣고 공격한 사례도 보고됐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1월 9일 보고서를 통해 "이스라엘군이 지난 4일 가지시티 동부 제이툰에서 사무니 일족 110여 명을 건물로 몰아넣고는 24시간 뒤 포격했다"며 "이 공격으로 약 30명이 숨졌는데 그중 절반가량이 어린이들이었다"고 밝혔다.1)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공습을 전쟁이라 표현한다. 자위권 행사를 위해 하마스와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오랜 분쟁에 따른 결과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은 전쟁이라 부를 만한 것이 아니다. 자위권을 행사할 뿐이라고 말할 것도 못된다. 그것은 양측의 사상자 수만 비교해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은 살인과 학살이란 단어를 떠오르게 만든다.
 

▲ 이스라엘 군 지상군     © IDF 공보실

가자지구에서 전해지는 소식은 끔찍함의 정도를 넘어선다. 개와 쥐가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체를 뜯어먹고 있으며, 숨진 지 며칠 된 엄마 옆에 탈수 증세로 죽음과 싸우고 있는 아이가 붙어 있었다. 구호 차량에도 여지없이 로켓은 날아들고, 의료진들은 한계에 달한 의료품들로 쏟아지는 부상자들을 치료하느라 애를 태우고 있다. 기계처럼 부상자들의 팔·다리를 자르고 있다는 팔레스타인 현지 의료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지옥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폭격으로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하늘을 향해 이스라엘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과연 이것을 전쟁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판 '총풍'?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그 역사가 오래됐고, 그만큼 사안이 복잡하기도 하다. 한때 평화무드가 조성되기도 했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분쟁은, 그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있기 때문인지 풀기 복잡한 사안으로 남아 있다. 끊임없는 분쟁은 수많은 사상자와 팔레스타인 난민을 낳았다. 이번 사태 역시 그럴 터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그동안 계속되어온 분쟁과는 뭔가 다르다. 이스라엘 내부의 정치적 상황이 가자지구 공습 사태에 깊숙하게 개입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 상황을 살펴보자. 이집트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휴전에 합의한 것은 2008년 6월 19일이다. 그러나 휴전 후에도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공방이 오갔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심심찮게 로켓이 날아올랐으며,2) 이스라엘은 2008년 11월 가자지구를 급습해 하마스 요원 6명을 사살하기도 했다. 휴전에는 합의했지만 분쟁은 계속됐던 것이다. 일례로 워싱턴의 중동정책협의회(MEPC: Middle East Policy Council)에 따르면 2008년 1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11개월 동안 이스라엘인들은 432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은 29명의 이스라엘인들을 살해했다.3)

이 와중에 2008년 12월 13일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휴전 합의 내용을 이행하는 한 휴전 기간을 연장할 뜻이 있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하마스는 12월 20일 '이스라엘의 가자 봉쇄가 계속되는 한' 휴전 기간을 연장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봉쇄를 푸는 것은 당초 휴전 합의 내용 중 하나였다. 결국 양측은 휴전 합의 조건을 이행한다면 휴전 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다는 똑같은 얘기를 했던 것이었다.4)

그러나 이스라엘의 주장은 기만에 불과했다. 휴전 기간 내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습을 차근차근 준비했다는 정황이 이스라엘 언론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의 영자지 『하레츠』는 2008년 12월 27일 인터넷판에서 "바라크 국방장관의 직접 지시에 따라 장기간 가자 침공 계획이 차근차근 준비돼왔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정보수집 작업을 벌였고, 2008년 11월 들어서 팔레스타인 측의 로켓 공격이 이어지자 구체적인 계획안이 마련됐다. 그리고 2008년 12월 18일,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와 에후드 바라크 국방장관이 가자지구 공습을 공식 승인했고, 12월 24일 각료회의를 거쳐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 침공계획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5)

올메르트는 2008년 12월 25일 알아라비야 TV와의 회견에서 "나는 전쟁을 선언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중단해야만 한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지하드에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6) 가자에 대한 공습 직후에는 "(이스라엘의) 치안을 향상시킬 기초를 닦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7) 치안을 향상시킬 기초를 닦는 일이 이렇게 무지막지한 학살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은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카디마당)와 에후드 바라크 국방장관(노동당), 치피 리브니 외교장관(카디마당) 3명이 이끌고 있다. 이들은 서로를 경계하는 사이이기도 하지만, 2009년 2월로 예정되어 있는 총선에서 극우강경파인 리쿠르당의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와 맞서야 하는 공통 과제가 있다. 이번 가자지구 침공을 가리켜, 이 세 정치인의 이해가 맞물린, 이른바 이스라엘판 '총풍'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     © CBS노컷뉴스
이번 가자지구 침공으로 2009년 2월로 예정되어 있는 총선의 연기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다. 총선이 연기된다면 올메르트 총리와 바라크 국방장관, 그리고 리브니 외교장관은 정치공학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게 된다. 우선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을 지낸 바 있는 바라크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이번 가자지구 침공에 성공하면 땅에 떨어진 노동당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리고 군대 경험이 없는 리브니는 부족하다고 여겨졌던 군 통솔능력을 이번 기회에 보여줄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비리 혐의로 총리직을 2월까지 수행하게 되었던 올메르트는 총선이 연기되면 총리 재임기간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2006년 레바논 침공으로 땅에 떨어졌던 명예를 회복할 수도 있다.8)

휴전 기간 내내 착실히 진행되었던 가자 침공 계획은 바로 이 세 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발생한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 이해관계 때문에 가자에서는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만약 미국의 방관이 없었다면, 아니 미국이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방패막이가 되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전범이 되었을 수도 있다. 특히 2006년 레바논 침공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올메르트는 더더욱 이런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 터이다.9)
  
전쟁총리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에후드 올메르트를 "전쟁수상"이라고 칭했다.10) 2006년 레바논 침공에 이어 2008년 세밑에 또 다시 가자 침공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부시 부자는 그나마 10년이라는 터울을 두고 전쟁을 일으켰지만, 올메르트는 겨우 2년 사이에 두 번의 침공을 감행했다.

올메르트는 1945년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났다. 헤브라이대학에서 심리학과 철학, 법학을 공부한 그는 1973년 28세의 나이에 리쿠르당 후보로 나서 이스라엘 의회 총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이후 1990년 보건부 장관으로 재임한 뒤 1993년 예루살렘 시장으로 당선됐다.

당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평화협정을 체결을 앞두고 있던 이츠하크 라빈 총리는 "특히 예루살렘 선거 결과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진전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전폭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극우정당인 리쿠르당의 이츠하크 샤미르 전 총리의 오른팔이었던 올메르트가 당선됨으로써 라빈 총리의 팔레스타인과의 화해 무드에 찬물을 끼얹었다. 올메르트는 예루살렘 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의 것이며 팔레스타인 국가의 한 부분이 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11)

올메르트는 2003년까지 예루살렘 시장직에 머무르며 아리엘 샤론 총리 재임 기간에는 부총리 겸 통상산업 장관직을 맡았다. 그동안 그는 팔레스타인 지역인 동예루살렘에 정착지를 건설했고,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 분리장벽을 구축하는 샤론의 정책에 적극 동참했다. 2006년 1월 아리엘 샤론 총리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총리 대행이 되었고, 2006년 3월 총선거에서 소속당인 카디마당이 승리하자 연정을 구성해 총리 자리에 올랐다.
 
그가 총리 대행으로 있던 때인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집권당인 파타당을 제치고 원내 1당이 되는 선거혁명을 이끌어냈다. 하마스가 127석 중 76석을 차지한 데 비해 파타당은 4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던 것이다. 테러집단으로 규정했던 하마스의 총선 승리는 이스라엘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마스가 현재의 테러조직 형태로 남아 있는 한 이스라엘은 이들이 참여하는 정부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혀왔던 올메르트는 하마스가 집권에 성공하자 요르단강 서안의 분리장벽 건설을 가속화하기로 결정했다.12)

하마스 정권의 등장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분쟁으로 치달았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즉각 철수할 것을 주장했고, 이스라엘은 테러 자금에 쓰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지원해오던 5500만 달러의 자금을 전면 동결했다. 그리고 올메르트는 2006년 2월, 팔레스타인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 건설한 유대인 정착촌을 철수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이스라엘 총리가 공개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세운 정착촌을 철수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총선에서 승리한 뒤 올메르트는 4년에 걸쳐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의 요충지 등을 이스라엘 땅으로 병합시킨 뒤 일방적으로 팔레스타인과의 국경선을 확정하겠다는 '새 국경' 계획을 천명했다.13) 팔레스타인인들의 반발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평화를 위해…
 
그 와중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날아오는 로켓포에 대항한다는 목적으로 가자지구에 폭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2008년 6월 25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인민저항위원회(PRC)가 이스라엘군 2명을 죽이고, 1명을 납치해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인과의 교환을 요구하자, 6월 27일 전투기를 동원해 가지지구의 유일한 발전소 등을 폭격한 뒤 28일 새벽에 지상군을 투입했다. 7월 12일에는 레바논의 시아파 민병조직인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군 2명을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이스라엘은 7월 13일 레바논을 침공하는 등 전선을 확대했다. 레바논 침공은 헤즈볼라를 소탕하겠다는 목적이었다. 33일간 계속된 레바논 침공에서 이스라엘군은 민간인에 대한 폭격을 자행했다. 그리고 그것이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바논 침공이 끝난 뒤 나온 국제앰네스티 보고서는 실수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 에후드 올메르트     © 로이터
"공격의 유형과 범위, 민간인 희생자 숫자와 피해 규모를 보면, 공격을 정당화하는 것이 공허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증거들은 공공시설, 발전시설, 민간주택과 산업시설의 광범위한 파괴가 --군사 목표물을 겨냥하다가 우연히 민간인과 민간시설에 피해를 입히는-- '부수적 피해'가 아닌, 이스라엘 군사 전략의 의도적이고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14)


인권감시 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도 "오늘 가나 공습으로 최소 54명이 죽었고, 그중 절반 이상이 어린이였다. 이런 사실은 이스라엘군이 남부 레바논을 '무차별 폭격지대'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그 지역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을, 공격받아 마땅한 전투원으로 보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민병대원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15)

2006년에 이어 2008년 올메르트는 다시 한 번 대규모 학살을 일으키고 있다. 비록 '전쟁' 혹은 '자위권 행사'란 말로 학살을 미화하고 있지만,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이 학살인지 아닌지를…….

그 학살은 2008년 말에 다시 시작되었다.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미국은 2006년과 마찬가지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유일하게 반대하며 이스라엘의 뒤를 밀어주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도 말을 아끼고 있다. 이스라엘의 오만을 방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오만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죽음의 행렬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폭력의 악순환은 계속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정치적 입지 때문에 다른 민족을 살상하는 일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 아니 그 전에 이스라엘은 언제까지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것인가. 그들의 다음과 같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는 없을까.

"아, 이스라엘. 영원히 이 교훈을 배우지 못할 것인가? 우리 사이에서 살고 싶다면 제발 아랍인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라. 이 세계에서 남자들은 전쟁을 통해 성장한다. 당신들이 도발할수록 그들은 더 강하게 싸울 것이다. 당신들은 여성과 어린아이들을 죽임으로써, 당신들을 추격할 새로운 세대의 헤즈볼라 전사들을 만들어낸 뿐이다. 헤즈볼라를 없앨 방법은 하나뿐이다. 하마스를 없앨 방법은 하나뿐이다. 당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아랍인들의 증오를 없앨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당신들이 평화를 찾을 길은 하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라. 먼저 인정하라. 당신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과 땅을 훔치고 쫓아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둘째, 사과하라. 그리고 셋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조국을 만들게 해주고, 난민들에게 보상하라. 이렇게 했을 때만, 당신들과 우리가 평화롭게 살아갈 것이다."16)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오길,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만행에 사과하길 기대하기는 무리일까.


[각주]
 
1) 구정은, 「이스라엘의 만행」, 『경향신문』, 2009년 1월 12일, 1면.
2) 이는 하마스가 아닌 무장세력 '이슬람지하드'에서 벌인 일로 알려져 있다.
3) 홍미정,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 노벨평화상 뱉어내시죠」, 『오마이뉴스』, 2009년 1월 8일, 인터넷판.
4) 정인환,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전쟁노름」, 『한겨레21』, 2009년 1월 12일, 67면.
5) 정인환,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전쟁노름」, 『한겨레21』, 2009년 1월 12일, 68면.
6) 유세진, 「올메르트, "무력사용 주저 않는다"… 팔에 로켓포 공격 중단 최후통첩」, 『뉴시스』, 2008년 12월 26일, 인터넷판.
7) 구정은, 「이스라엘, 가자지구 대공습 팔레스타인 최소 280명 사망」, 『경향신문』, 2008년 12월 29일, 1면.
8) 올메르트는 2008년 7월 뇌물수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2008년 9월 집권당인 카디마당이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고, 2009년 2월 조기총선을 실시하게 되면서 2월까지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 검찰에서는 2008년 11월 26일 올메르트가 통상산업장관과 예루살렘 시장 재직 시절에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여러 공공기관에서 출장 경비를 동시에 요구하는 방법으로 11만 달러를 모아 호화 가족여행을 한 혐의로 기소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9) 2006년 레바논 침공에 대해서는 림 하다드의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아시아네트워크, 2008)를 참고하기 바란다. 레바논의 기독교도이자 전직 기자인 림 하다드는 이 책에서 33일간 이스라엘이 자행한 살해와 학살, 그리고 무기력한 국제사회의 대응과 미국의 방조 혹은 협력을 상세한 기록으로 남겼다.
10) 홍미정,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 노벨평화상 뱉어내시죠」, 『오마이뉴스』, 2009년 1월 8일, 인터넷판).
11) 최충웅, 「이·PLO 밀월 "파경 우려", 이 집권당 시장선거 패배 파문」, 『경향신문』, 1993년 11월 4일, 4면.
12) 손제민, 「하마스 압승 의미와 전망」, 『경향신문』, 2006년 1월 27일, 12면.
13) 박민희, 「팔 하마스 내각 험난한 출범」, 『한겨레』, 2006년 3월 31일, 12면.
14) 림 하다드, 박민희 역,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아시아네트워크, 2008, 270쪽.
15) 림 하다드, 박민희 역,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아시아네트워크, 2008, 210쪽.
16) 림 하다드, 박민희 역,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아시아네트워크, 2008, 279쪽

 
* 본문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09년 2월 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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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1/28 [17:0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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