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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왜 '무장과격 국가'가 아닌가
[변상욱의 기자수첩]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그곳서 태어난 게 죄라면 죄
 
변상욱   기사입력  2009/01/10 [13:59]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가자지역 공격으로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국제기구의 구호활동 차량도 공격당한다니 이스라엘이 얼마나 모질게 맘먹고 침공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역사가 복잡하긴 하지만 골격만을 놓고 보면 역시 19세기 후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민족만의 베타적인 순혈(純血) 국가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치밀하게 추진해 가는 과정임은 분명하다.
 
혹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웬간 하드라, 점령 지구에 들어가 얌전히 살면 별 일 없을 것 아니냐, 왜 맨날 덤벼들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하나의 통계수치만 소개한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한 명이 하루에 쓰는 물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300명이 쓴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아무런 일거리가 없는 실업자이다. 죽은 듯이 살라고 하지 않아도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 이스라엘의 양심적 병역거부 - 리퓨즈니크 운동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스라엘의 건국과 부흥 과정을 '거대한 기적', '위대한 승리'로 배워왔다. 세계관과 가치관에서 철저한 아메리칸 프렌들리로 자라왔기에 오늘 조금이라도 균형을 찾아보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차지하고 국가 건설에 나선 과정은 미국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학살하고 몰아내며 국가를 세우는 과정과 흡사하다. 아메리카 인디언 패망의 역사를 보면 인디언들이 살던 땅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저항하자 백인들은 평화협정을 맺자고 하고 평화협상 하러 나온 인디언 대표들을 모두 체포해 처형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스라엘이 10월 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UN의 중재와 4차 제네바 협정을 무시하고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 지역에 강제수용하는 과정도 마찬가지.
 
미국의 진보 지식인 노엄 춈스키는 '권력과 테러'에서 이미 미국과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히틀러나 히로히토같은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지식인들은 이스라엘이 히틀러가 '게토'에 유대인을 가두고 강제 처형시킨 홀로코스트를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부었으나 미국이 뒤를 봐주는 상태에서 이스라엘은 요지부동.
 
유대인들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재건했다는 소식을 듣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몰려 들었다. 소련에 살던 유대인들도 팔레스타인 새 땅으로 가려 했는데 소련이 출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거절자. refusenik.그런데 소련의 유대인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인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광야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죽도록 고생한 모세에게 여호와는 "넌 들어가지 못한다, 선조들과 함께 광야에서 잠들라. 이것으로 족하니 더 이상 이 일로 나에게 말하지 말라" 딱 잘라 거절한다. 역사적으로 모세가 최초의 거절자, 리퓨즈니크였고 소련의 유대인들은 이것을 떠올리며 출국금지를 계시로 받아들인 것.
 
20세기 이스라엘이 세워진 팔레스타인에도 리퓨즈니크 거절자가 생겨난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는 군복무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이스라엘 방위군 군인들 사이에서 번져 나간 것이다. 이때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리퓨즈니크 - 거절자'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을 침공한 아랍국가와의 전투라면 맨 앞에 나서겠지만 모든 것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핍박하는 근무라면 거부한다는 운동으로 이들은 좌파나 반전·평화주의자도 아니고 오히려 이스라엘 시오니즘에 불타는 애국 청년들이고 대학 졸업 후 군에 입대한 청년들이었다.
 
수백명이 비겁자로 낙인 찍혀 징역형을 받았지만 이들은 단호했다. 한마디로 가보면 안다는 것이었다. "점령 지구에 가서 보니 정말 아니더라. 그리고 이 점령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양쪽 모두 엄청난 희생을 당하게 될 것이 뻔했다."
 
◈ 이스라엘은 왜 무장과격 국가가 아닌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 보도의 정확성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사례 연구>라는 논문이 있다.
 
팔레스타인 청소년이나 어린이가 숨졌을 때와 이스라엘 청소년 또는 어린이가 숨졌을 때의 언론보도 건수를 비교하면 이스라엘 어린이 사망을 보도하는 기사가 30배 정도 많다는 게 보고 논문의 요지.
 
2000년 9월부터 6개월 간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300여명 숨졌는데 어린이 청소년이 93명, 이스라엘 어린이 청소년이 숨진 건 4명 뿐이었지만 신문보도로는 이스라엘 청소년 어린이가 더 피해가 큰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
 
한국의 언론들도 미국 언론을 인용해 보도하면서 핵심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팔레스타인 저항 단체는 과격, 무장단체라 부른다. 그렇다면 군 시설, 민간인 마을 가릴 것 없이 미사일과 폭탄을 퍼붓는 이스라엘은 과격 국가, 무장 국가라고는 쓰지 않더라도 왜 침공이나 파괴라고 쓰지 않고 늘 공격이라고 보도하는가.
 
"이스라엘 군은 라파 지역 군사작전을 중단하기로 했다." 2004년 5월 라파 지역에서는 이스라엘 군의 미사일과 탱크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70명이 살해당했지만 이건 테러라고 안 쓰고 군사작전이라고 쓴다. 그럴 수도 있다는 가치판단이 배어 있는 표현이다.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민간인이 아니다. 살던 곳에서 쫓겨나 굶주리는 난민들임에도 민간인이라 쓰는 것도 이스라엘에 편중된 표현.
 
눈을 크게 뜨고 뉴스를 읽자.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거기서 태어난 게 죄라면 죄일 뿐 고통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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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1/10 [13:5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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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2009/01/11 [13:27] 수정 | 삭제
  • 제목만 보고 내용을 읽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무장과격 국가가 아니라는 내용의 글인줄 알겠습니다. 내용과 제목을 일치시키기 위해 제목을 바꿔보자면 "이스라엘이 왜 무장과격 국가가 아니란 말인가?"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