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동안 ‘사회양극화’는 한국 사회의 담론공간을 집어삼켰다. 그것은 언뜻 실질적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먹고 사는 민주주의’의 신호탄처럼 비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 담론을 배가 불러터진 부유층과 누추한 정신세계를 드러낸 중산층이 노 정권을 공격하려는 요량으로 퍼뜨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수 대중은 처음에는 사회양극화가 분배 결핍과 빈부격차의 문제라는 데 합의했으나 이내 경기부양과 성장률 제고라는 엉뚱한 해법으로 줄달음질쳤다. 민주노동당은 “진보개혁 세력 교체”에 실패했고 한나라당은 이명박을 앞세워 고지를 점령했다. 지난 5년동안 중산층 해체는 가속화되고 많은 서민은 좀더 빈민에 가깝게 내려앉았다. 이것이 노무현 정권의 책임이라는 것은 거의 모두가 동의한다. 그러나 주류 언론과 거대 야당의 공세로 두드러져 보였던 사회의 몰락을 통해 대중이 배운 것은 미미하다. 특히 이명박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그러하다. 최장집이 그동안 설명했듯 민주화 시대의 역행을 막으려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한다는 발상은 잘못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 분노한 대중이 수구세력을 지지하는 현실에 고개 가 숙여진다. 하지만 이회창의 출마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썩은 카드를 쥐고 있는 심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명박의 지지자들은 이회창의 지지자들에 비해 고학력·고소득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지역주의에서 자유로운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허나 그들에게는 전략적 사고가 없다. 그들은 이명박시대가 한나라당에게 파멸을 가져다주리라는 것을 모르거나, 혹은 외면하고 있다. 헨리 조지의 영향을 받은 경제학자 이정우가 정책 브레인으로서 이헌재를 위시한 모피아와 결투를 벌인 끝에 낙마하는 동안, 노무현 정부는 토건국가의 비전을 분명히 하며 부동산폭등의 도가니에 끝없이 불을 지폈다. 이명박은 노무현의 더없는 후계자가 되어, 노무현의 직계 후계자들이 이야기한 ‘새만금 골프장 건설’보다 더욱 위대한 규모로 한반도를 파헤칠 것이다. 전임자가 매우 훌륭하게(!) 터를 닦아놓은 FTA 광장에 해외투자자를 대상으로 고안된 청계천 물줄기를 흘릴 것이고, ‘간접 수용’을 전가의 무기로 삼은 해외투자자들은 국가의 공공 정책에 소송을 걸고 한몫을 톡톡히 챙길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법인세를 감면하여 대기업에는 웃음을 재정상황에는 주름을 선물할 것이고, 출총제를 무력화시킬 것이다. 누리망에서는 노무현과 이명박이 BBK와 삼성의 대선축하금을 두고 빅딜을 했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물증이 없는 음모론에 뇌동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왜 몇해전부터 그 둘의 연대설이 나돌았는가 하는 의문이다. 아주 소극적으로 추정하더라도, 그 둘이 연상공학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었음을 간파할 수 있다. 둘 사이에 발견되는 대조점조차 그 둘의 친화성을 돋보이게 할 만큼. 약속은 모호하고 언동은 분명하다. 아무리 대통령 또는 유력 대통령 후보의 권력이 약화되었을지라도, 대한민국에서 최고권력의 지위를 다투는 사람이 늘 피해자인양 꼴불견을 떠는 모습도 흡사하다. 반론에 직면했을 때 재반론을 내놓지 않고 수사와 결기 그리고 희망고문만으로 돌파하는 습관도 쏙 빼 닮았다. 노무현에게는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것인 반면 이명박에게는 “넘어오는” 것이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명박은 그리고 아마 한술 더 떠 재벌의 은행 소유를 거들 것이다. 또 노무현 정부조차 주저했던 경기부양을 남발할 것이다. 재벌이 독재하고 영세업체가 난립하며 중견기업이 드문 U자형 경제구조는 골짜기의 깊이를 자랑하게 될 것이고, 인건비가 오르는 중국에도 노동조건이 엄격한 유럽에도 진출하지 못한 한국 경제는 내수의 부진과 분배의 불균등으로 파멸에 달할 것이다. 그때 이명박에게 원군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이미 지금도 이명박을 용인하는 대열에서 삼삼오오 이탈하는 시민들이 흔하다.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비토층으로 합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측이 말을 바꿔가며 둘러댄 것이 무색하게도 검찰은 매우 간결하게 이명박의 결백을 보증하였고, 역풍은 그의 어록을 정리한 게시물과 유튜브에서 인기를 누린 BBK 관련 동영상에 힘입어 거세어지는 중이다. 이 기세는 마치 황까와 황빠가 합쳐진 듯 무섭다. 대통령 선거와 평행으로 흐르는 삼성 사건에서도 이명박이 이득을 볼 여지는 없다. 그는 기껏해야 이건희의 부패혐의로 이목을 집중시켜 자신의 부패혐의 덮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 처지다. 이명박에게는 솜씨도 없다. 국밥집에서 촬영된 대선 광고는 한나라당의 홍보기법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었음을 증명하는 회심의 수작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명박이 밥을 “쳐먹는”(광고에 나온 대사다. 선관위는 나를 미워하지 말라) 장면은 짧게 줄이거나 아예 뒷모습만을 비추는 것으로 처리되었어야 했다. 이미 대세가 기울어진 선거에서, 살아온 나날이 각인된 그 낯을 구태여 드러낼 필요가 있었을까? 홍보관계자들은 이것을 아는 모양인지 현수막에서는 그의 얼굴을 뺐는데, 불행히도 이명박 후보는 실무자들을 질책하며 제 얼굴을 넣어 수정하는 쪽을 강제했다. 이명박이 집권 후 깜짝 승부수를 던지며 수구세력을 당혹케 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전 재산을 헌납하기까지 하면서 대통령에 오른 만큼 마음을 비우고, 적정 수준으로 대기업 규제를 유지하면서 복지예산은 확대하는 ‘배반’을 저지를 수도 있겠다. 대북 강경책이 총자본의 이해를 거스르는 것을 알았을 때 북핵폐기와 전쟁종식의 흐름에 자연스레 편승하는 반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명박은 그렇게 해도 자신의 지원자 김영삼처럼 90%의 국민 지지도를 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때는 이명박과 굳게 어깨를 겯었던 재벌이나 냉전세력이 현재 김경준이 수행하는 역할을 떠맡아 보복에 나설 테니 말이다. 그가 권력의 유지를 목적으로 쓴 탈은 결국 권력의 압력으로 벗게 된다. 그러므로 이명박이 어떻게 하든 집권 말기에는 김영삼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아니, 그가 집권 초반에 무사할지도 장담 못하겠다. 노무현의 짜장면은 맛이 없었다. 정동영은 짜장면에 고춧가루를 좀 뿌리고 ‘다꽝’을 듬뿍 얹어 주었다. 이회창은 면이 원흉이라며 짜장밥을 내왔다. 문국현은 짬짜면을 선사했고, 이인제는 간짜장을 자랑한다. 권영길은 춘장을 바꾸고 수타면을 만들려고 한다. 이명박은? 짜장면 곱빼기를 요리하고 있다. 노무현이 집권한지 넉달쯤 지난 뒤 몇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 지지율 30%를 넘기 버거워했던 시절, 대통령 씹기는 국민스포츠가 되었다. 만일 며칠 뒤 이명박시대가 펼쳐진다면 대통령 씹기는 ‘국민레포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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